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살벌한 전두환 군사 독재 시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춘기 중학생에게 군사 정권이 펼친 3S 정책은 큰 혜택이었다. 일명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섹스(sex)는 사춘기 중학생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호기심 천국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적인 논란을 뒤로 하고 오직 개인적인 취미 성향으로 하는 말이다. 당시 영화를 좋아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한국 에로 영화에 눈을 안 돌릴 수가 없었다.<산딸기>(1987), <애마부인>(1982), <뽕>(1985) 시리즈가 모두 그때 나왔다. 사춘기 중학생 눈으로는 본 그 영화들은 지금 포로노 야동보다 더 충격적이고 흥분시켰지만 사실 뭐 보이는 것이라고는 비에 젖은 실루엣과 젖가슴 정도였다.
남녀 정사 관계 장면에선 꼭 장작불이 불타오르고, 맑은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고 그러면서 화면 전환이 되어 오직 당신의 상상력에 맡겼으니 말이다.
사실 <에로영화>를 먼저 적극적으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록키>와 <람보> <로보캅> <탑건> <영웅본색>을 보러 갔다가 2편 동시 상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가난했던 중, 고등학교 시절 단돈 500원에 대형 스크린으로 동시에 두 편 영화를 본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 보면 축복이고 행운이었다.
영화 <친구>에서 잠시 나온 부산 범일동에 위치했던 <보림극장> <삼성극장> <삼일극장>이 그런 무대였다. 당시 각 가정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봐야 영화 좀 봤다고 자랑하던 당시였다. 물론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MBC <주말의 영화>를 보고, 일요일이면 KBS <명화 극장>을 꼭 챙겨 보고, 명절이면 <특선영화>를 시간대별로 메모하면서 밤잠 설치며 봤던 사춘기 시절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존재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나도 나이 들었지만, 그 시절 배우들도 모두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 늘고 심지어 고인(故人)이 되었다. 거울을 보면서 스크린을 보면서도 나와 영화 주인공들이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내가 본 영화들 중에서 혼자서 남긴 메모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본 것도 기억이 가물해지고, 주인공, 감독 이름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한국 영화 100편 정도는 소장하고 싶다. 종이책으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나를 아는 주위사람들이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데,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왔을 때 단 한 편을 추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거 1980년대 추억 깃든 영화가 인생 영화 일 수도 있고, 오늘 상영하는 최신 영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대부분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 추천을 한다. 가령 연령이 조금 있으신 분들에게는 <시네마 천국>(1988)이나 <인생은 아름다워>(1998) 같은 누가 추천해도 명작인 영화들인 영화를 말하기도 한다. 젊은 여성에게는 오히려 추천 영화를 말하기가 더 어렵다. <슬럼덩크>(2022)를 좋아할 수도 있고, <기생충>(2019)을 좋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젊은 남성들은 <탑건>(2022)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모두 좋은 명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영화들이다.
감동적인 영화라고 무조건 추천할 수도 없다. 이래저래 감동 눈물을 한없이 많이 흘리는 나로서는 애니메이션을 봐도 가슴 저린 진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니까 말이다. 가령 <토이 스토리4>를 보고, ‘우디’‘버즈’등 장난감들과 헤어져 안타까워하는 주인공과 함께 초등학생 모르게 슬쩍 눈물을 훔친다.
하여튼 이 책은 내가 보고 기록한 많는 영화 메모중에서 <한국 영화 100편>을 모았다. 그동안에도 영화들이 계속 상영되고 또 감동받고 해서 더 늘어날 지경이었지만, 일단 현재까지 본 영화와 배우 중심으로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 배우들의 명대사를 자신도 모르게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슬쩍 내 뱉을 때, 대화 기술과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될 터이니, 한 줄 대사쯤은 암기해도 좋을 듯 싶기도 하다.
혹시나 이 책을 읽는 분들 중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정도 한국 영화는 꼭 봐주어야 아니 이미 봤어야지 어디에서도 영화 좀 봤다는 시네필 맘으로 빵구를 낄 수 있지 않을까? ㅎㅎㅎ
주말 라떼 한잔과 더불어 조조영화를 수십 년 동안 봐 왔던 본인은 그냥 재밌는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영화 평론가처럼 한 줄 평을 남기다가 뭔가 남기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정도 한국 영화 정도는 봐주어야 할 것 같다는 주관으로 선택 기준으로 책을 만들었다.
책은 한 줄 평이 아닌 ‘1,000자’ 정도로 요약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상식이 부족하기에 유투브와 각종 영화 프로그램 등으로 주워들은 여러분도 다 아는 정보를 긁어모은 것뿐이다. 절대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정보가 틀리고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이다.
소장용으로 지인들과 함께 할 책이니, 혹시나 읽다가 실망스러워도 너무 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완성도를 위해 삽화를 그려주신 정관에 거주하시는 닉네임 ‘백곰’님과 성질 참으면서 오타 수정에 큰 도움을 주신 연산동에 사시는 ‘주 박사’님께 큰 감사와 고마움을 전달합니다.